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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 사커에서 선정한 위대한 50인 번역입니다.

원본 링크는 여기를 클릭하세요.

위대한 50인 선정 기준은
1. 능력의 수준 - Level of Abilities
2. 꾸준함, 뛴 기간 - Consistency, Longevity
3. 위대함, 수상 경력 - The Greatness, Awards
4. 해당 시대에의 일반 대회 성적- Standard Competition In Each Era


이번에는 46위에 선정된 AC 밀란의 전설 군나르 노르달입니다.


Gunnar Nordahl

Date Of Birth : 19 October 1921
Position : Striker
Nation : Sweden
Height : 185 cm
Major Club : AC Milan
Caps : 33 Games (43 Goals)
World Cup Participation : None
Professional Score Record : 446 Goals/ 520 Games
Club Honours : 4 Times Swedish League
2 Times Italian Series A
2 Times Swedish Cup
4 Times Copa Italia
International Honours : 1948 Olympic Game Gold Medal
Individual Achievement : 4 Times Swedish League Top Scorer
5 Times Italian Series A Top Scorer
1 Time Olympic Game Top Scorer
AC Milan All-Time Topscorer
IFFHS Sweden Greatest Player of The Century

군나르 노르달은 스칸디나비아 반도 출신의 역대 최고의 축구 선수이자, 50년대 초반 최고의 타겟 스트라이커였다. 또한 노드달은 경기에서 가장 효과적인 스트라이커 가운데 하나였다. 노르달은 압도적인 힘과 주력, 그리고 놀랄만한 슈팅 파워를 바탕으로 플레이했다. 노르달은 Hörnefors IF에서 축구선수로서의 커리어를 시작해서 IFK Norrköping으로 옮겼다. 노르달은 한경기 7골을 기록하기도 했다. 스웨덴 리그에서 뛰는 동안 노르달은 172경기에서 149골을 넣었다. 노르달은 AC 밀란에서 대표팀 동료인 군나르 글렌, 닐스 리드홀름과 함께 그레놀리 트리오로 명성을 떨쳤다. 노르달은 세리에 A 통산 득점 순위 2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게임당 득점률은 0.77로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오직 실비오 피올라만이 537경기에서 247골을 기록하며 통산 득점에서 노르달을 앞서고 있으며, 피올라는 게임당 0.46골을 기록했다. 밀란을 떠난 후 노르달은 로마에서 2시즌을 뛰었다. 당시에는 프로 선수들이 스웨덴 대표팀에 소집되지 못하는 규정이 있었기 때문에, 노르달은 밀란으로 이적하며 대표팀을 은퇴할 수 밖에 없었고, 1950년 월드컵에 소집되지 못했다.


다음은 영문 위키백과 번역입니다.

군나르 노르달은 스웨덴의 축구선수이고 AC 밀란에서 1949년부터 1956년까지 플레이한 것으로 유명하다.

군나르 노르달은 Hörnefors IF에서 축구선수로서의 커리어를 시작해서 IFK Norrköping으로 이적했다. 노르달은 IFK Norrköping에서 한경기 7골을 기록하기도 하며 4번의 스웨덴 챔피언쉽을 차지했다. 노르달은 스웨덴에서 뛰는 동안 172경기에서 149골을 기록했다.

노르달은 1949년 AC 밀란으로 이적해서, 그의 대표팀 동료인 군나르 그렌, 닐스 리드홀름과 결합해서 그레놀리 트리오로 명성을 떨치게 된다. 노르달은 AC 밀란에서 8시즌을 보내는 동안, 세리에 A 득점왕을 5번 차지한다. 노르달은 210골로 AC 밀란 역대 최다 득점자이다. 노르달은 291경기에서 225골을 넣으며 세리에 A 통산 득점 2위이기도 하다. 오직 실비오 피올라만이 노르달보다 많은 골을 넣었다. 이것은 노르달이 세리에 A 외국인 최다 득점자이며, 경기당 득점 0.77로 최고의 효율을 자랑하는 스트라이커라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100경기 이상을 소화한 선수 가운데 최고의 득점률이며, 피올라는 537경기에서 247득점으로 경기당 0.46득점에 그쳤다.

노르달은 밀란과의 계약 이후, 로마에서 2시즌간 플레이했다. 노르달은 2차대전 이후 이탈리아 최다골 기록인 35골을 49-50시즌에 기록했다.

노르달은 1945년 스웨덴 국가대표 유니폼을 입게 되었다. 1948년 노르달은 올림픽에서 본선 득점왕에 오르며, 스웨덴의 올림픽 축구 금메달 획득을 이끌었다. 프로 축구선수의 국가대표 소집을 금지하는 스웨덴 국가대표팀 규정에따라, 노르달이 밀란으로 이적한 후에는 그렌, 리드홀름과 함께 1950년 월드컵에 출전하지 못했다. 노르달은 국가대표 경기를 30경기밖에 치르지 못했지만, 44골을 넣으며 경기당 약 1.5골이라는 기록을 남겼다.

노르달은 올림픽에서 우승을 차지했을때 그의 형제인 Bertil, Knut도 함께였다. 베르틸은 올림픽 이후 이탈리아의 아탈란타로 이적했고, 노르달과 같은 이유로 월드컵에 출전할 수 없었다. 크누트는 스웨덴에 머물렀고, 월드컵에 출전할 수 있었다. 크누트는 월드컵 이후에 결국 이탈리아의 AS 로마로 이적하게 된다.

그레놀리 트리오의 한명으로 이제는 밀란의 전설이 되어버린 노르달은 셰브첸코가 밀란에서 100번째 골을 넣었을때 "셰브첸코는 지금까지의 골의 두배를 넣고, 26골을 더 넣고 나서야 'Il Canoniere'를 넘어섰다고 할 수 있지"라고 말했다.

노르달의 아들인 토마스 노르달은 1970년 월드컵 스웨덴 대표팀의 일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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